구 아바시리 형무소 후타미가오카 형무지소

きゅうあばしりけいむしょ ふたみがおかけいむししょ
  • 이축복원
  • 건축연대:1896년
  • 재현연대:1999년
  • 면적:1,933m²
이 건물은 아바시리 형무소 농원 작업의 선도적 시설로서 1896년 아바시리 서방 구릉지에 "굿샤로 출장소"로서 설치되었다. 아바시리호, 노토로호의 두 개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건설되어 그 후 "후타미가오카 형무지소"로 개명되었다. 1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아바시리 형무소 수용자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장소로서, 또 넓은 농장에서 수용자들이 작물 관리에서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자립적으로 실시하는 개방적 처우 시설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존하는 목조 형무소로서는 가장 오래되었고 1999년에 박물관으로 이축되었다.
각 건물의 건축 연대는 청사, 옥사, 취사장이 창건 당시의 1896년, 교육용 강당 및 식당이 1926년, 쇠고랑 부착소가 1930년이다. 1896년 당시에는 각 건물이 독립해서 세워져 있었지만, 다이쇼 이후 시설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필요한 건물을 정비하여 이동 복도로 연결하였고, 청사도 개축하여 거의 현재와 같은 586평의 농장 시설이 되었다.

청사

소규모의 서양식 건축이며 외벽은 판재로 부착, 지붕은 우진각 형태로 철판으로 덮었다. 지붕 골조는 킹 포스트 트러스로, 돌출부는 와고야로 되어 있다. 남쪽 중앙에 현관을 내고, 남북으로 복도가 나 있으며, 동쪽에는 사무실, 서쪽에는 숙직실, 휴게실의 배치로 되어 있다. 바닥 중앙부는 벽돌을 깔고 그 외에는 콘크리트 토방으로, 천장 굽도리에는 몰딩 처리를 했다.
전체적으로 간소하지만, 현관의 박공과 창문 상부의 커브 부분, 문틀에 장식을 넣었다.

옥사

옥사 외벽은 판재로 부착했고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철판을 덮었으며 중앙에 중앙 감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동쪽으로 제1옥사, 서쪽으로 2옥사의 직렬 배치이지만, 창건 당시에는 북쪽으로도 옥사를 연장시켜 T자형 배치였다.
중앙 감시소는 복도를 판재 부착, 천정은 매끈한 천장으로 이중으로 굽도리를 하였고 벽은 회반죽 칠로 수직 판재 부착의 요벽을 설치했다. 내부는 중앙을 통로로 서로 맞보게 방을 배치하였는데 3평 정도 넓이의 혼거방 각 20방이 있다. 통로와 방 사이의 벽은 중앙을 목제문, 양 옆 단면을 평행사변형으로 해 수직 격자로 상부에 목제 수직 격자창이 붙어 있다. 지붕 골조는 중앙 감시소가 킹 포스트 트러스로 제1옥사는 트러스와 와고야를 조합한 지붕골조이고, 제2옥사는 하현재를 연결하지 않은 퀸 포스트 트러스와 비슷한 형태의 지붕 골조이다.

교육용 강당 및 식당

교육용 강당은 마루로 된 하나의 공간으로, 바닥을 높여 무대를 마련하였으며 내부 벽은 회반죽풍 마무리 내리닫이 유리창을 열거시키고 수직 판자 부착의 요벽을 설치했다. 천정은 둥근 모양의 중심 장식과 각진 모양의 환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지붕 골조는 퀸 포스트 트러스이다.
식당은 하나로 된 토방으로 천정은 반자천장으로, 큰 마름모꼴 격자 환기창이 2군데 설치되어 있다. 창문은 교창이 붙은 미닫이 창으로 외부에 목제 수직 격자가 붙어 있다.

쇠고랑 부착소

농사일로 출입할 때 형구인 쇠고랑의 벗고 차는 장소로, 2 층 우진각 지붕, 철판으로 덮었다. 작업장은 단층 맞배지붕 구조로 철판으로 덮었다.
외벽은 판재로 부착. 북쪽을 발 씻는 장소으로 하여 가늘고 긴 발 씻는 통을 놓았고, 남쪽은 빨래터였다. 2층은 잡품고, 의복고, 도서고로 되고 있으며 바닥는 전면 판재 부착으로 가장 윗부분에 채광창을 마련하고, 천정은 반자틀 천장 부분 외에는 킹 포스트 트러스가 보인다.

취사장

지붕은 맞배지붕 철판으로, 외벽은 판재 부착, 지붕틀은 킹 포스트 트러스이다.
연기 내는 곳을 크고 작은 2군데 만들었다. 보일러실을 사이에 두고 창건 당시의 목욕탕이 있었던 곳에 욕조가 2군데 설치되었다. 후타미가오카 형무지소는 전국에서도 드문 농원을 갖고 있는 형무소 건축군으로 1896년 개설 당초에 지어진 주요 건물이 남아 있으며, 형무소 밖에서 자면서 했던 작업장에서 단계적 처우 제도가 선구적인 시설로 발전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행형사상의 가치가 인정 받았고, 역사적 학술적으로 평가되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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